마태복음을 처음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아니라 긴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는 기록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족보를 단순한 조상들의 명단으로만 읽으면 마태가 왜 복음서의 첫머리에 족보를 배치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의 구조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1장 17절에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 마태복음 1:17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14대씩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왜 이렇게 족보를 배열했을까요?
마태복음 1장 족보는 세 시대로 나뉩니다
마태복음 1:17을 기준으로 보면 족보의 구조는 매우 선명해집니다.
① 아브라함 → 다윗 : 14대
② 다윗 → 바벨론 포로 : 14대
③ 바벨론 포로 → 그리스도 : 14대
이 구분에서 중요한 것은 각 시대의 경계에 놓인 사건과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의 중심에 서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위와 후손에 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는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시기의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따라서 이 족보에는 단순한 혈통의 연결을 넘어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다윗의 왕권으로, 다윗의 왕권에서 포로기의 몰락으로, 다시 포로기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14대,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첫 번째 시기는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다윗에게서 끝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당시에는 아직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손은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고, 야곱의 자손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윗이 등장합니다.
마태는 족보에서 다윗을 특별히 “다윗 왕”이라고 기록합니다.
첫 번째 14대는 이런 의미에서 약속이 왕국으로 전개되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언약이 한 민족의 역사로 이어지고, 마침내 다윗 왕국이라는 중요한 지점에 도달합니다.
두 번째 14대, 다윗에서 바벨론 포로까지
두 번째 시기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다윗 시대에 정점에 이른 왕국은 이후 여러 왕을 거치면서 쇠퇴합니다.
솔로몬 이후 왕국은 분열되었고, 반복되는 불순종과 우상숭배 속에서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무너집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마태는 이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족보 속에 분명하게 표시합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입니다.
첫 번째 시기가 아브라함에서 다윗으로 올라가는 역사라면, 두 번째 시기는 다윗의 왕국에서 바벨론 포로라는 몰락으로 내려가는 역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마태의 족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왕국이 무너졌다고 하나님의 약속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14대, 바벨론 포로에서 그리스도까지
세 번째 시기는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앞부분의 아브라함이나 다윗, 솔로몬과 비교하면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많습니다.
스알디엘, 스룹바벨, 아비훗, 엘리아김, 아소르, 사독, 아킴, 엘리웃….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상대적으로 조용해 보이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족보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세대가 계속 이어지고 마침내 요셉과 마리아를 거쳐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에게 도달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마태가 구성한 족보의 마지막 목적지는 단순히 이스라엘 왕국의 정치적 회복이 아닙니다.
족보가 향하는 최종 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1도 처음부터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따라서 족보의 시작과 끝을 함께 보면 마태가 독자에게 보여주려는 방향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14대’일까요?
마태가 14라는 숫자를 세 번 반복했다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구약의 족보와 비교하면 마태의 족보에는 일부 세대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고대 족보에서는 오늘날의 가족관계증명서처럼 모든 세대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낳다’라는 표현 역시 직접적인 부자 관계보다 넓은 조상과 후손의 관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마태의 족보는 단순한 연대기적 명단이 아니라 신학적인 목적을 가지고 선택되고 배열된 족보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4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시됩니다.
대표적인 해석 가운데 하나는 다윗의 이름과 14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문자가 숫자의 값도 가질 수 있는데, 다윗의 이름을 이루는 히브리어 자음의 수값을 더하면 14가 됩니다.
ד(D) = 4
ו(V) = 6
ד(D) = 4
따라서 4 + 6 + 4 = 14가 됩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마태가 족보 전체를 14라는 숫자에 맞추어 배열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자손이며 약속된 왕,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1에서 이미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잘 연결됩니다.
14를 ‘7의 두 배’로 보는 해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4는 7의 두 배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7이 갖는 완전함이나 충만함의 상징성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합니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와 안식일을 비롯하여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가 완성과 충만을 나타내는 여러 장면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14가 세 차례 반복되는 족보를 하나님의 계획이 정한 때를 향해 충만하게 진행되었다는 구속사적 메시지와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한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7 자체가 “14는 7의 두 배이므로 이러한 뜻이다”라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3은 하늘, 4는 땅이므로 3+4=7’이라는 식의 상징수 해석 역시 본문 자체가 명시적으로 제시하는 설명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을 마태가 14대를 구성한 유일하고 확정적인 이유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성경의 숫자 상징을 통한 구속사적·묵상적 해석으로 구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신중합니다.
본문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마태가 의도적으로 역사를 14대씩 세 부분으로 배열했고, 그 구조 속에서 다윗과 바벨론 포로와 그리스도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입니다.
흥망성쇠를 넘어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역사
세 시기를 한꺼번에 놓고 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 → 다윗
약속에서 왕국으로
다윗 → 바벨론 포로
왕국의 영광에서 몰락으로
바벨론 포로 → 그리스도
포로와 기다림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도 있었지만 악한 왕들도 있었습니다. 나라가 번성했던 때도 있었지만 왕국 자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던 포로기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역사는 끊어지고 하나님의 약속마저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 모든 역사의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기록합니다.
이것이 족보가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향해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묵상
족보를 이렇게 읽으면 마태복음의 첫 장은 더 이상 지루한 이름들의 목록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바벨론 포로에서 그리스도까지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과정에는 인간의 믿음과 불신앙, 순종과 불순종, 영광과 몰락이 모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태가 구성한 족보는 결국 한 사람에게 도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도 눈앞의 한 장면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구속사의 관점에서 역사는 단순한 사건들의 무의미한 반복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그 사실을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약속도, 다윗 왕국의 영광도, 바벨론 포로의 절망도 결국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족보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42개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름들을 지나 역사의 끝에 누구를 세워 놓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마태가 족보를 통해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자료
- 마태복음 1:1-17
- 창세기 12장
- 사무엘하 7장
- 역대상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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